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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희⑧, “서민적 감수성의 부재가 586의 타락을 불러”

  • 이현중 편집위원
  • 등록 2021-04-27 17: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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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의와 희생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앞장서 실천하는 것이다

레이건은 노동자들과 부대끼며 정치에 눈떠


신철희 소장은 민주당원 레이건이 공화당 대통령 레이건으로 변화는 과정을 설명했다. (사진=최인호 기자)

신철희(이하 신) : 로널드 레이건은 침체일로를 걷던 미국의 보수를 다시 일으켜 세운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레이건은 공화당 후보자 자격으로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그런데 그는 본래는 미국 민주당의 당원이었습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열렬한 추종자였기 때문입니다.

 

공희준(이하 공) : 한국식으로 형용하면 좌파에서 우파로 전향했네요.

 

신 : 그는 정치적 노선을 변경한 명분을 소련이 이끄는 공산주의 진영이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세계를 위협하는 부분에서 찾았습니다. 레이건은 영화배우였습니다. 게다가 그는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아 사후에도 인기가 높습니다. 저는 큰 인기를 끌지 못하는 B급 연예인에 불과하던 레이건이 정치인으로 전업해 마침내 대통령 권력까지 움켜진 이유가 매우 궁금했습니다. 

 

현직 대통령으로 재임할 당시의 레이건에게 정책에 관련된 전문성은 거의 없었습니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그를 참모들이 써준 원고를 앵무새처럼 읽기만 했던 연기력 좋은 정치인에 지나지 않았다고 깎아내리고 있습니다. 반면에 레이건이 식견과 판단력이 뛰어난 대단히 유능한 통치자였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이렇게 호오가 엇갈리는 와중에도 레이건이 하루 이틀 뚝딱하고서 배우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건 아니란 사실에 대해서만은 대다수의 사람들 의견이 일치하고 있습니다.

 

공 : 레이건이 배우에서 정치인으로 갈아탈 무렵에 분수령이 된 전환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신 : GE(General Electric)는 발명왕 에디슨이 창립한 미국 굴지의 제조업체입니다. 이 회사에서는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가전제품도 만들어 팔았습니다. GE는 판매 촉진 차원으로 미국 유수의 방송사인 CBS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을 후원했는데, 레이건은 이 프로의 고정 출연자 역할을 꿰차게 됩니다. 한데 GE는 레이건에게 색다른 제안을 한 가지 합니다. 미국 전역에 산재한 100개가 넘는 제너럴 일렉트릭의 공장들을 방문해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상대로 연설도 하고, 간담회도 진행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공 : 로널드 레이건 판의 「청춘 콘서트」였네요.

 

신 : 예. 수많은 GE 사업장을 방문해 노동자들과 대화하고 소통한 경험은 레이건에게 일반 대중과의 관계를 어떻게 관리하고 유지하는지에 관한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노하우를 완벽하게 숙지시킵니다. 그는 정치인으로서의 준비를 확실히 마친 셈이었습니다. 텔레비전 출연으로 그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도 엄청나게 높아졌음은 물론이었습니다.

 

공 : 꿩도 먹고 알도 먹었네요.

 

신 : 그렇죠. 이를 기반으로 레이건은 미국에서 제일 인구가 많은 주인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선출됐으니까요.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역임한 경력은 그가 미합중국의 제40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데 확고한 발판 노릇이 돼주었습니다.

 

레이건은 학창 시절에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아니었습니다. 미국 중부에 소재한 그리 유명하지 않은 대학의 사회학과를 나왔을 뿐입니다. 그러나 레이건은 아이비리그를 졸업하고서 정해진 엘리트 코스를 밟아나가는 여느 모범생들의 전형적인 인생행로와는 판이하게 광활한 민중의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획득한 기회를 최대한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그는 의회의 입법과 행정부의 정책이 평범한 노동자들의 삶과 일반 서민의 운명에 실제로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를 현장에서 낱낱이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레이건이 자신은 정치학 학위를 민생현장에서 취득했다고 담담하게 회상할 수 있었던 까닭입니다. 인민과 함께 울고 웃는 일이야말로 위대한 정치인으로 대성하는 데 필요한 최고의 밑거름임을 레이건의 경우는 뚜렷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노동자가 부캐였던 사람들의 숙명적 한계

 

노동자의 삶이 인생의 본캐가 아닌 부캐였던 인사들의 한계는 피할 수 없는 태생적 굴레와도 같았다. 이미지는 80년대를 대표하는 노동자 매체인 「월간노동문학」 1988년 11월호 표지

공 : 한국의 기성 제도권 정치인들이 강조하는 여의도 식의 경험치는 진정한 경험치와는 무관한 일로 평가절하될 수가 있겠네요?

 

신 : 그렇죠. 586 세대들이 젊었을 무렵에 공장 같은 일선 산업현장으로 위장취업을 많이 감행했었습니다. 그때 어려운 가정환경 탓에 대학을 가지 못한 노동자들을 자주 만났을 텐데 그곳에서 서민적 감수성을 왜 제대로 터득하지 못했는지 저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공 : 진짜 먹고살기 힘들어 공장에 취직한 사람들과 노동운동을 조직하겠다는 목적의식적인 동기 아래 그곳에 위장취업한 사람들과는 눈높이가 같을 수가 없으니까요.

 

신 : 노동자들을 지도하고 교화해야만 할 계도 때는 계몽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게 패착이었던 듯싶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와 대등한 인격체로 존중하기가 아무래도 힘들었을 테니까요.

 

공 : 공장에 위장취업한 운동권 학생들에게는 노동자가 본캐가 아닌 부캐에 불과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노동자가 부캐인 사람들에게 공장은 잠깐 간만 보고 도망가는 장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신 : 모세는 이집트 왕실의 왕자로 자랐습니다. 그렇지만 본인의 근본을 알게 되자마자 그는 현재 누리는 영화로운 삶을 미련 없이 박차고 나와 이집트 땅에서 굴욕과 수난으로 점철된 노예생활을 죽지 못해 이어오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단한 품으로 망설이지 않고 돌아갔습니다. 정치 지도자로서의 모세가 민중적 정체성을 부캐가 아닌 본캐로 선택한 사건은 그의 일생일대의 결단이었습니다.

 

공 : 지금의 우리네 586 세대는 절대 고생 못합니다. 어떻게 일궈놓은 등 따시고 배부른 대도시 중산층의 안락한 삶인데…. 그러니 586들이 앞에서는 「전대협 진군가」를 목 놓아 부르다가도 뒤에서 자기들끼리 모이면 “지금 이대로!”를 수군대는, 영락없는 안정희구 세력으로 전락한 것이죠.

 

신 : 입으로 대의를 부르짖는 짓은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출세하고 성공한 586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들이 역설하는 희생은 자기의 희생이 아니라 남들의 희생을 뜻합니다. 더욱이 자기들에게 물질적으로 손해가 되는 일이라면 털끝조차 움직이려 들지를 않습니다. 그로 인해 그분들에게는 부동산 투기 일삼고, 위장전입 불사하고, 세입자한테 임대료 왕창 올려 받고, 허위로 계약서 작성하는 행동쯤이야 아무렇지 않게 저지를 수 있는 일들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586 세대는 한국사회의 명실상부한 기득권 세력으로 강력하게 군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춥고 배고픈 민주투사들로 아직도 계속 행세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때로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참칭하는 짓마저 서슴지 않고 있어요. 본인들이 응당 짊어져야만 마땅할 사회적 의무와 역사적 책임을 철저하게 방기하고 있습니다.

 

공 : 소장님께서 질타한 586들의 내로남불한 위선적 행각들을 두 글자로 줄이면 ‘사기’가 됩니다. 박정희나 전두환 등의 군사독재자들은 민중을 탄압하고 박해했습니다. 문재인 정권의 주축인 왕년의 학생운동권 출신의 586 권력자들은 인민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습니다. 사기를!

 

신 : 이렇게까지 발언의 수위가 높아지면 안 되는데. (웃음)

 

공 : 제방 터뜨리는 마지막 한 방울은 제가 맡았습니다. (웃음) 오늘 수위 높고 알찬 말씀 들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신 : 특별한 알맹이 없는 이야기 끝까지 진지하게 경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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